죄가 있지만 천국에 갈 수 있다? Q.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마음에 죄는 있지만,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되었는지요?
A. 교회를 다니면서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해하고 혼돈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하셨지만, 이들은 마음 속에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에 대한 기준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로리(R. Lowry)가 작사 작곡한 찬송가 343장에 보면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하는 가사가 나옵니다. 우는 것과 힘쓰는 것, 착한 것과 참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이나 율법을 따라 착하게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으로 여기고 있기에, 참된 믿음과는 상관없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특히, 몇몇 이단 종파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성경적으로 분명히 잘못되었지만, 자기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바른 믿음으로 고집하기에 마음이 말씀 앞에 여리고 성처럼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통 신앙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참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으로 바르지 않은 믿음을 참 믿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그릇된 믿음 중 하나가 바로 ‘비록 죄가 있지만, 예수를 믿기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마음에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를 믿고 있다는 생각이 바른 믿음일까요?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고 권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을 정확히 잴 수 있는 잣대이며, 신앙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참된 기준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서로 짝이 있어, 말씀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바로잡아 줍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바른 믿음인지를 시험하려면 성경에 비추어봐야 합니다.
만일 성경적으로 잘못된 믿음이라면, 결국 버리운 자가 되어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의 몇몇 구절만 가지고 믿음을 확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성경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모순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내려놓지 않습니다. 그들 중 한 부류는 ‘예수님을 믿지만 죄인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부분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는 말씀만을, 그 믿음의 근거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의인에 관한 말씀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의 전체적인 것에 비추어 자기 믿음을 시험하거나 확증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맞는 말씀만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믿음이고 구원인데, 뭐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느냐?’라고 반문합니다. 그들 역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는 말씀만 의지할 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마 7:21)라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는 것을 봅니다.
Q. 성경을 한쪽 부분만 치우쳐 보기 때문에 잘못된 믿음을 가진다는 것입니까?
A. 그렇습니다. 성경은 성경이 풀기 때문에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그 말씀의 앞뒤 문맥, 그리고 관련된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한 구절만 가지고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려고 한다면 그릇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역시 어느 한 부분만 가지고는 확증할 수 없습니다.
민수기 21장의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이야기나, 출애굽기 12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야기를 살펴보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4,1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불뱀에 물리게 되자, 모세가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의 요구대로 불뱀을 제거하신 것이 아니라, 놋뱀을 쳐다보도록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뱀의 독을 빨아내거나 뱀을 쫓아내야 되겠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달랐습니다. 여기서 불뱀은 죄를 의미하고,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뱀에게 물린 사람은 더 이상 물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놋뱀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죄를 범한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기 전에 예수님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유월절의 심판을 어린 양의 피가 막았듯이, 죄로 인한 심판을 막는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죄와 심판을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여전히 죄가 남아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해결해 놓으셔서 죄가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는 말씀도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단순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을 부르기 전에 먼저 믿음이 와야 하고,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오는 것이며, 말씀은 전파하는 자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시인하기에 앞서 믿음이, 믿음에 앞서 들음이, 들음에 앞서 전파하는 자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그런데 마음으로 믿은 결과는, ‘마음이 의(義)에 이르렀느냐?’ 즉 ‘죄가 없는 상태가 되었느냐?’라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마음이 의에 이르지 않았다면, 입으로 시인하더라도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Q. 그렇다면 참 믿음과 거짓된 믿음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A.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에 의해 확신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믿고 제사를 드리는 것과 일반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고 했습니다. 즉, 믿음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에게 있는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야고보는 ‘몸에 쓸 것을 주지 않은 채 말만 하는 것은 거짓된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살전 1:3) 말과 함께 능력이 따른 믿음이라야만 참 믿음인 것입니다. 말은 맞지만 실제로 마음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거짓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씻겨진다. 예수님을 믿기에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하면서, 마음에는 ‘그래도 나는 죄가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말뿐인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와 헌금을 잘 내며, 많은 봉사와 구제를 하더라도 마음에 죄가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역사가 따르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는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죄는 예수님이 씻으셨지만, 자범죄는 매일 회개해야 된다.’고 믿는데, 그것 역시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Q.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A.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셨다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속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어떤 사람들은 회개 기도를 하면 죄가 씻겨 진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사망은 생명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오직 피만이 죄를 속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쫓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10:22)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염소와 양의 피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늘 반복되는 불완전한 제사로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에 대한 모형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후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셨고, 마지막으로 죄 사함을 “다 이루었다.”(요 19:30)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7,18) 이 약속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는 죄가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마음에 죄가 남아 있다면 예수님이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말씀은 그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죄와 죄를 온전히 사하셨다는 말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즉, 마음에 죄가 있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정죄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바로 이 ‘죄에 대한 온전한 해방’에서 시작됩니다. 그때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찬송가 209장)이란 찬송을 마음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깨달음으로 마음이 정죄에서 벗어나 의에 이른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7)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의가 없는 불의한 사람은 그 생각, 곧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당신의 말씀 앞에 나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온전한 죄 사함의 믿음을 허락해 주십니다.